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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하프 위크 (9 1/2 Weeks, 1986)

개인 평점 : ★★★★☆

한 줄 요약 : 사랑이 먼저냐, 섹스가 먼저냐. 사랑과 섹스의 해체 그리고 조립.




섹스가 쉬운 시대를 살고 있다시대를 주름잡던 스타들이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잠자리와 섹스판타지를 쉬이 이야기한다음란물을 보기 위해 부모님의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내려 갖은 꾀를 부리던 때가 있었다당시만 해도 매스컴은 세태를 ‘포르노의 범람’이라 일컬으며 문제의 심각성을 진단했었다시대는 달라졌다조막만한 액정으로 별다른 인증절차도 없이 수천 가지 플랫폼에서 음란물을 접할  있다남녀노소가 없이마치 레저스포츠처럼하지만 누구도 현재를 ‘포르노 전성기’라 부르지 않는다.


작은 갤러리에서 일하는 엘리자베스는 이혼녀이다하지만 젊고 아름답다당차고 열정적이다그런 그녀에게 존은 운명처럼 등장해 최면처럼 그녀를 매혹한다. 하지만 존이 엘리자베스에게 보이는 행동들은 매혹과 기행을 오간다자신이 욕심내는 여자를 별장까지 모셔놓고는 납치범이나 되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말을 내뱉어 기분을 상하게 하고기어이 관람차에 혼자 태우고는 허공에 멈춰세워 울부짖게 하고손목시계를 선물하며 12시마다 그녀를 애무하는 자신을 떠올려달라고 하는 엘리자베스를 혼란스럽게 한다하지만  혼란은 더욱 강렬한 유혹으로 바뀌고 엘리자베스는 존에게 완벽히 사로잡힌다.


<9 1/2 Weeks> (이하 ‘나인하프위크’) 이끌어가는 지배적 요소는 ‘섹스’다섹스가 영화의 전부라 불러도 좋을 만큼 나인하프위크에서의 섹스는 특별하다여느 상업영화의 그것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안대를   얼음으로 나체를 훑고눈을 감은  음식을 떠먹여주고온몸에 범벅이 되도록 꿀을 흘려 뒤엉키는  감각의 공유를 통한 섹스를 연출한다촉각미각시각  우리가 흔히 오감이라 부르는 감각을 조각조각 해체해 다시 섹스로 조립해낸다존의 아이디어와 엘리자베스의 정열이 만나는 순간이다파격적 노출과 격렬한 베드씬이 없이도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마치 간지러운 곳을 긁는 듯한 기분이 든다.


우리는 포르노가 쉬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감각적이지   시대를 살고 있다눈을 뜨면 입을 닫고귀를 열면 코를 막는  우리의 감각이 무얼 느낄  있고 어디까지 협업할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후반둘의 관계가 끝나는 사건이 발생한다존은 엘라자베스에게  호텔의 객실에서 안대를 하고 기다릴 것을 부탁한다엘리자베스는 미심쩍어 그냥 존을 기다리지만이윽고 도착한 존에 의해 안대를 하게 된다하지만  낯선 여자의 목소리와 손길에 화들짝 놀라며 상황을 파악하게 되고 전희를 나누려는 존과 창녀를 욕하며 호텔을 뛰쳐나간다그저 변화를 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며 뒤쫓는 존을 뒤로   홍등가로 들어선 엘리자베스는 존에게 복수라도 하듯 낯선 남성과 키스를 나눈다엘리자베스는 눈물범벅이다.


사실 예고된 끝이었다존은 엘리자베스에게 선물을  줄은 알아도 엘리자베스의 의사 따위엔 관심이 없었고특별한 섹스를 위한 지시는   알아도 연인이 나눌 법한 속깊은 대화나 감정표현에는 익숙치 않았다엘리자베스가 떠나기 직전에야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한다엘리자베스가 떠나고 나서야 현관문에다 대고 사랑을 읊조린다. 50 세기 전에 돌아오라고 독백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돌아가지 않는다섹스는 황홀했고 오감을 열게 했지만마음을 열게 하진  했다 끝엔 사랑이 있어야 했다.


나인하프위크에서 빛과 색채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또다른 원동력이다인물의 감정대사의 호흡에 따라 빛을 달리쓰고 실루엣 연출을 통해 과할 수도 있는 감정선을 몽환적으로 뭉뚱그려낸다특히 엘리자베스의 의상을 통해서도 감정의 변화를 엿볼  있는데다채롭고 화려했던 의상들이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차츰 검고 단조로워지기 때문이다이는 씬과 씬을 이어붙여 만든 것처럼 원색적인 전개 속에 단단한 뼈대로 작용하며 극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나인하프위크는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감각과 감각이 만나 어떠한 흥분을 낳는지우리가 놓치고 살던 감각에 눈을 뜨게 한다그게 연출을 통해서든공감대를 통해서든아니면 마치 지침서 같은 다양한 베드씬들을 통해서든하지만 어째 찜찜한 마음인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왜일까.

섹스가 쉬운 시대를 살고 있다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사랑이 쉬웠던 적은 없었다육체를 탐하는  누구보다 능숙하고 마법사 같았던 그리고 그런 그에게 ‘느껴본  없는 감정’을 느끼게  정열적인 여자 엘리자베스둘이 끝내 등을 돌리게  것은 엇나간 존의 욕망 때문일까 아니면 섹스는 알아도 사랑은 몰랐던 존의 어리석음 때문일까그것도 아니면 엘리자베스가 현관문을 나서기   걸음 앞에는 진정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오감을 풀어 섹스를 표현해내는 동안 나인하프위크는   물음을 숨겨두고 있었다존과 엘리자베스가 나누고 있는  섹스였는지사랑이었는지둘은 사랑하게   있는지.


그리고 사랑이 쉬운 시대라는   수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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